■ 대중문화 속 의료기기 이야기 - 27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7회

펜트하우스 in 의료기기 (feat. 의료기기는 강하다)

▲ 임 수 섭<br>LSM 인증 교육원 대표<br>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br>RA 자격증 교육 강사<br>
▲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
RA 자격증 교육 강사

'아빠, 날 사랑하면 증명해! 매로나를 죽이라고!'

귓가에 환청처럼 들리는 딸의 음성에 윤설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ICU. 그의 앞에 있는 중환자실 간판이 동공을 채운 것 같이 눈앞이 캄캄해졌다. '친딸을 위해 의붓딸을 죽여야 한다니….' 국내 최고의 종합병원 청야의료원 VVIP 전담 신경외과장으로 '환상'적인 수술 실력을 가진 그였지만, '환장'할 정도로 소심하고 연약한 성격 덕분에 '병약 색시'라는 별명으로 놀림 받는 것도 오늘 거사를 통해 끝내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강철 색시’로 거듭날 것이다!'

윤설은 스스로 다독이듯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중환자실 문을 열었다. 'DDU-DU DDU-DU' 매혹적인 기계음과 함께 작동하고 있는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의붓딸 매로나에게 다가가는 동안에도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묻어나 있었다. 청년 시절 첫사랑 소윤희와 다시 맺어지면서 원치 않는 부산물로 갖게 된 그녀의 딸을 죽인다면, '강철 색시'는 커녕 '배신 색시'로 손가락질받을 것이 뻔했다. 그 때문에 지금 행동은 비밀로 묻혀야 했다.

"금별아, 아빠와 너는 하나야…."

윤설은 스스로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며 매로나가 누워있는 침대 바로 옆에 섰다. 그 앞에 있는 탁자에 들고 온 생수병을 올려놓은 윤설은 충혈된 채 흔들리는 눈빛으로 매로나를 응시했다.

"너만 없다면…." 청야예술제 트로피의 주인공은 그의 친딸이 됐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의붓딸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다. 이 목적의식을 각인시키며 더욱 독하게 마음먹은 그가 입을 굳게 다물고 그녀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향한 곳은 엄밀히 말하면 그녀 뒤에 있는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 이것들만 없으면 매로나의 목숨은 얼마 못 가 끊어질 것이 자명했다. 윤설은 인공호흡기를 매로나의 입으로부터 뗀 다음에 곧바로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를 거칠게 밀어내서 침대 아래로 떨어뜨렸다.

"쾅-!" 육중한 소음과 함께 딱딱한 바닥에 떨어진 두 의료기기를 윤설은 발로 몇 차례 거칠게 찬 후, 탁자에 놓았던 생수병을 열어서 그것들 위로 부었다. 이렇게 하면 후에 응급 의료진이 오더라도 이 의료기기들이 매로나를 살리는 데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윤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그때였다. "어딜 가나요, 하윤설 씨?" 등 뒤에서 홀연히 들려온 청명한 음성에 윤설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을 매로나 양 살인미수죄로 체포합니다." 윤설의 앞에 안경을 쓴 반듯한 얼굴의 한 남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 어떻게 벌써 왔지?" "바이탈 신호가 잡히지 않으면 의료기기 최소 요건에 따라 10초 안에 알람이 울리게 돼 있어요. 당신의 도주 시간보다 짧은 시간이죠. 게다가 이 제품은 5초 안에 울려요. 외국에도 수출 많이 하는 명품 국산 의료기기이거든요."

여유 넘치는 안경 남자의 말에 놀라기도 잠시, 곧 윤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매로나의 생명은 구할 수 없을걸?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가 박살 났거든." "과연 그럴까요?”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목소리만큼 선명하게 빛나는 순간, 안경 남자가 섬광같이 윤설의 팔목을 잡았다. 그와 동시 윤설의 팔을 뒤로 꺾음과 동시에 그의 오금을 발로 눌러서 그를 무릎 꿇리며 제압했다. "악-! 아악-!!" 안경 남자가 윤설의 팔을 꺾은 각도를 더욱 가파르게 만들자, 윤설의 비명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때 이르러서야, 경찰과 경비원이 달려왔다.

"역시 주인공이 일을 끝내면 나타나는군요." 안경 남자는 싱긋 웃으며 윤설을 그들에게 인계하고는 중환자실로 따라오게 했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몇 번이나 찼다고. 거기에다 물까지 들어부었고! 내부 부품은 박살 났고 누수로 전자 회로는 맛이 갔을걸?!"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발악하듯 외치는 윤설을 찬찬히 응시하던 안경 남자가 말갛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그 반대군요."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윤설을 뒤로하고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를 원위치로 올려놓고 매로나에게 의료기기의 장착 부위를 접촉시킨 안경 남자가 정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의료기기의 전기기계적 안전에 관한 식약처 규정과 국제 규격인 IEC 60601-1에 따르면 말이에요.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는 완전한 외장으로 구성된 샘플 또는 강화되지 않은 가장 큰 영역을 나타내는 외장 부분에 대해, 약 50mm의 직경, 500g±25g 질량의 매끄러운 고체 강구(鋼球)를 제품 각 부분 위에 1.3m의 높이에서 자유낙하 시켜야 해요. 의료기기는 이 충격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요. 또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높이 혹은 1m의 높이 중, 높은 위치로부터 콘크리트나 동일하게 견고한 기초 위에 평평하게 놓인 두께 50mm±5mm의 견목판 위로 의료기기를 자유 낙하시킨 후에도 문제없이 작동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식약처 허가 의료기기 라벨을 붙일 수 없지요. 게다가…."

안경 남자는 곧게 세운 검지를 윤설을 향해 좌우로 흔들면서 첨언했다. “의료기기는 물 또는 미립자 물질의 유해한 침입에 대해 보호돼야 해요. 이 보호 정도에 따라 외장을 분류하거든요. 이러한 분류는 IPN1N2로 기재되는데, N1은 미립자 물질에 대한 보호 정도를 나타내는 정수이고, N2는 물의 침입에 대한 보호 정도를 나타내는 정수에요. 흔히 알고 있는 방진 방수 등급이지요. 그런데 인공호흡기와 환자감시장치 정도면 최소 IP33 이상은 되지요. 즉, 직경 2.5mm 이상의 고체 이물질과 물 스프레이로부터 확실하게 보호가 되는 거예요." "크윽-, 의료기기가 그, 그렇게나 강하단 말인가…?" 결국 윤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절망스럽게 말을 흘렸다. "그러니 우리 의료기기를 유리같이 잘 부서지는 TV나 물에 바로 녹아버리는 의약품과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윤설은 안경 남자의 마지막 말에는 뭔가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경찰이 수갑을 채우고 중환자실 밖으로 끌고 나가는 와중에 반문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중환자실 밖으로 나간 직후, 윤설이 겨우 정신을 붙들고 물은 질문. 청야의료원장 자리와 펜트하우스의 최정상까지 올라가겠다는 자신의 야망을 꺾은 남자가 원망스러운 동시에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더블에스." "더블에스? 뭐? 마벨 히어로도 아니고…. 한글로 말해," 수수께끼 같은 상대의 말에 치기 어린 짜증을 낸 윤설을 향해 안경 남자가 말을 이었다. "수서…." '드르륵-'하지만 윤설이 상대의 말을 다 듣기 직전, 중환자실의 자동문은 닫히고 말았다. 

 

저작권자 © 의료기기뉴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