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대식,김동재,장덕진,주경철,함준호, 출판사 동아시아

초가속 

코로나라고 하는 전 세계적 감염병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과거 인류가 겪었던 질병의 대창궐 즉 '팬데믹'을 통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상할 수 있다. 

인류가 겪은 대표적 팬데믹으로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이 있지만, 콜레라, 홍역, 천연두를 비롯한 여러 질병들이 세계화 과정속에서 대륙간 이동을 통해 역사를 바꾼 예도 있다. 벵골, 스페인, 몽고의 지역 감염병이 지리적 한계를 벗어났을 때 면역을 갖지 못한 타지역 원주민들이 갖는 고통은 극심했으며 높은 치사율을 통해 감염병이 갖는 무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몽고의 침략과 함께 마차 바퀴에 묻어 침략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쓰러져 검게 변해가는 피부를 보며 신의 노여움이라는 해석 말고는 달리 설명할 과학적 방법이 없던 시기였다. 당시 노르망디 지방의 연구에 의하면 지역 주민 약 70프로가 흑사병의 희생자가 되어 유명을 달리했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로 현실은 참담했다. 하지만 그 결과 감염자의 피해는 노동인구의 급감을 가져 왔고 이로 인한 노동계층의 희소성이 확대되어 귀족계급과의 협상력을 높이게 되며 동시에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문화적으로 볼 때 당시 유행했던 ‘비즈’라는 얼굴을 비비는 인사법조차 금기시되는 행동 양식의 변화 역시 감염병의 결과다.

불과 수백 명에 달하는 스페인 정복군이 아즈텍 문명에 들어가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라는 질병으로 인한 대량 학살이었다. 불과 600명의 병사가 멕시코 테노치티틀란섬을 공격하려고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죽어 있었고 원인조차 알 수 없었던 멕시코인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좌절과 절망으로 무너졌다. 당시 질병의 특성상 일단 균에 감염되면 증상이 나타날 때 까지는 잠복기가 있고 감염자들 사이에 누군가 먼저 죽는 일이 발생하면 일단 주변 사람들은 그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대피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급격한 전염병의 전파를 유발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스페인 군대는 멕시코의 대규모 군대와 전투 몇 번 하지않고 상대의 전의를 상실하게 하여 멕시코 왕조를 무너뜨리게 된다.

병 뿐만 아니라 세계화로 인한 변화는 환경에서도 나타난다. 전 세계에서 야생낙타가 가장 많은 곳은 호주라고 한다. 중동의 토착 동물이 바다 건너 대륙까지 간 이유는 낙타를 운송수단으로 수출한 상인들의 역할이 컸고 지금의 호주 사막지대에서 뛰어난 적응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역시 미국의 지렁이를 비교한 결과 대륙이 연결된 멕시코보다는 영국에서 유래된 지렁이가 많았는데 이유는 운송선의 바닥이나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충진수의 영향으로 교역이 활발했던 영국과 미국 사이에 오가는 화물선에서 옮겨진 지렁이가 생태계에 정착한 예인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런 과거의 경험을 현실에 적용해보면 세계화로 인한 문화와 자본, 자원의 이동이 어느 오지에서 발생했다는 바이러스 하나로 인하여 현존 인류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나라마다 교역을 줄이고 여행은 금지되었으며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의 하나인 악수조차 금기시되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변화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하며 대면을 꺼리고 일상 속에 타인과의 거리에 민감해진다.

조금 더 영역을 넓혀보자. 지금 방역에 성공한 나라들과 실패한 나라들을 분리해 보면 확실한 차이를 나타낸다. 비교적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적은 나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방역에 대한 전권을 갖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감영병에 보다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국가보험체계를 통하여 모든 감염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균등히 주고 대신 감염이 의심되는 국민에 대하여는 격리라는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면 방역에 실패한 나라의 경우 분권화된 민간이 가지는 자발적 협조를 통하여 대응하고 의료체계 또한 개인의 선택으로 주어지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여 공권력에 대한 개입이 부정적이며 집단 결집보다는 개인의 선택이 중요한 나라들이다.

또 다른 변화는 우리가 갖고 있던 대면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한 두 시간의 대면 회의를 위하여 출장을 다니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어디서나 휴대폰 하나로 출장의 수고를 대치할 수 있는 생각의 변화가 온 것이다. 4차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기술의 발달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이지만 이번 팬데믹을 통해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보다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었다.

기업가치에 대한 변화도 마찬가지다. 화상회의를 예로 들자면 회의용 카메라는 한 번만 구매하면 된다. 하지만 영상회의를 위한 접속 플랫폼은 시간이 갈수록 사용량이 늘어나지만 재생산에 드는 비용은 0에 가깝다. 카메라 제조업자와 영상회의 프로그램의 운영자 사이에 최종 수익의 승자는 정해져 있다.제조업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은 투입한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추가투입이 없어도 생산물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 생산성에 있어서 기존 제조업과는 차원이 다른 계산법이 적용돼야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대통령선거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70%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무상의료 논란으로 반감을 갖는 여론이 형성되고,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적 논란으로 현직 시장이 물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코로나 이후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지원의 개념을 넘어서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로 발전하였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때 이를 보완하고자 미국의 기업인이 로봇 세금을 주장한 것처럼 금융자본주의의 불평등을 막을 수 없다면 이를 보완해야 하는 사회적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수혜대상자의 선정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논쟁을 뒤로하고 프리드만의 마이너스 소득세의 예를 들며 보편적이냐 선별적이냐의 논쟁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고 이중 세금이 마이너스가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자는 방안도 소개한다.

감염병의 시대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 기존의 가치가 바뀌고 있으며 이로 인한 행동양식과 문화도 바뀔 것이다. 과거와 같은 몰살이나 학살 규모는 아니더라도 인류는 분명 변화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앞으로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 감염병에 대한 전 인류적 공조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 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이번 코로나는 그 변화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하고있다.

이 책은 '새로운 시대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화두와 함께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김대식교수,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김동재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덕진교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의 함준호 교수가 각자의 견해를 밝히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모양으로 책을 엮었다. 

2020년 12월 도서출판 동아시아에서 초판 2쇄를 펴냈다.

[기고자 소개]

이태윤
자유와 방임을 동경하고 꾸준한 독서가 아니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믿는 소시민이며 소설과 시에 난독증을 보이는 결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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