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3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3회

"인권과 인류애의 상징 - 의료기기 임상시험"

▲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
RA 자격증 교육 강사

“안녕들하십니까?”

코로나19, 집값 폭등, 경제 불안, 복잡한 세계정세, 이상 기후 등 불안하고 안전하지 못한 현재, 이 말만큼 누굴 만날 때 먼저 나오는 질문은 없을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임은 분명하지만, 과거를 비춰볼 때 역사상 지금만큼 다수 인간이 풍족하고 안전한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중국 시황제보다 더 오래 살고 있고, 로마 황제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손안의 스마트폰만으로 할 수 있고, 몽골 칭기즈칸보다 더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으며, 나폴레옹처럼 자리 유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바쁘게 전장 곳곳을 다닐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과거 황제보다도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이면에는 인권의 향상이 있다.

인권은 모든 법에 앞서 존재하는 인간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서, 계급 ‘차별’을 받았던 고대와 ‘차별’되는 현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자유, 평등, 박애 등 인류 보편적 선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인류 노력의 결과이며, 인류애의 발현이다. 이러한 인권은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근대적이고 구체화되었고, 독일의 1919년 바이마르 헌법에 이르러 국가 내에 법제화되었다. 그런데 무려 약 5,000년 전 우리나라에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라는 뜻의 지극히 인권에 바탕을 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이념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권을 가장 먼저 선언한 국가였으며, 대한민국의 민주화 DNA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권의 확립을 통해, 자유, 평등 및 안전의 가치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더이상 특정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 인간이 희생되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연말에 굶거나 추위에 떨지 않고, 밝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칠 수 있는 것도 19세기부터 급격하게 향상된 인권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러한 개념 혹은 이념이 적용된 대표적인 예가 임상시험 제도가 아닐까 싶다. 임상시험의 개념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성경 속 다니엘서 1장 12절부터 15절과 같이 임금의 고기를 10일간 섭취하는 그룹과 채식한 그룹으로 나누어 대조군 개념을 적용한 실험이 있었고, 아랍 최고의 의학전범의 저자 이븐 시나는 약과 물질의 효능을 결정하는데 임상평가와 대조군의 개념을 언급했다. 18세기에는 제너가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한 종두법을 개발하고,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천연두 예방 접종을 도입하는 과정에 소년에게 바로 소 고름을 주사하거나, 사형수 7명에게 접종하여 임상시험을 수행했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목숨을 대가로 접종을 하는 등 인권 침해를 가한 사례이기도 했다. 그 이후 괴혈병 원인이 비타민 C 결핍이라는 것을 발견한 제임스 린드에 이르러서야 체계적인 임상시험이 실행됐는데, 괴혈병에 걸린 12명의 선원을 2명씩 6그룹으로 나누어 신선한 야채, 감귤, 레몬 같은 과일을 받은 그룹과 받지 않은 그룹을 나눠서 시험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후 존 헤이가스는 플라시보 효과를 밝혔고, 19세기에 영국의 프레더릭 악바르 마호메드는 진료 데이터를 수집하여 임상시험을 했다. 로널드 피셔에 이르러서는 실험 설계 원칙을 통해 다른 그룹에 무작위로 개인을 할당하는 ‘무작위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측정을 반복하고 실험을 반복하여 차이에 대한 원인을 확인하는 ‘반복’, 실험 단위를 서로 유사한 단위 그룹으로 배열하여 관련없는 변동 원인을 줄이는 ‘차단‘ 그리고 여러 독립 요인의 영향과 가능한 상호 작용을 평가하는 ‘요인 실험’ 등을 임상시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후 영국 의학 연구 위원회는 통제된 임상시험을 위한 치료 임상시험 위원회를 설립했고, 최초의 무작위 치료 시험으로써 폐결핵 치료에 대한 화학적 스트렙토마이신 효능에 대한 임상 시험에서 이중 블라인드와 위약 대조군을 두고 수행됐다. 이 스트렙토마이신 시험에 관여했던 오스틴 브레드포드 힐은 1950년 의학에 통계학을 적용하여 폐암 환자를 대조군과 비교하고, 흡연 습관과 건강 문제에 대해 장기 전향적 연구를 했으며, 몇 년에 걸쳐 3만 명 이상의 의사들의 흡연 습관과 건강 연구를 수행했다. 

이렇게 인권과 인류 복지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을 거듭하던 임상시험에 있어 흑역사로 남을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으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와 일본 군부가 실시한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을 들 수도 있겠으나, 이것들은 임상시험이라고 말하기 낯 뜨거운 정도로 무자비하게 인권과 생명을 짓밟은 잔혹한 범죄 행위에 불과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에 임상시험 피험자 보호와 관련된 유명한 강령이 나오니, 그것이 바로 ‘뉘른베르크 강령’이다. 이 강령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독일 전범들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거행된 뉘른베르크 재판 후에 나온 것이다. 이 전범 재판은 ‘반평화적 범죄를 위한 공모죄’,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죄’, ‘전쟁법 위반’ 및 ‘반인륜적 범죄’와 같이 4가지 죄명으로 해서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빌헬름 카이텔 등의 히틀러의 최측근을 대상으로 한 재판이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이들에 대해 가장 많은 유죄 판결이 나온 죄명이 바로 ‘반인륜적 범죄’이며,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가 유대인에 대한 대량 학살과 생체실험이었다. 

이처럼 임상시험은 진보와 퇴보 혹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개선되었고, 그 중심에 의약품이 있었으나 의료기기의 임상시험 비중도 커가는 추세이다. 의료기기의 임상시험은 허가 목적일 경우, 임상시험에서 피험자의 권리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의료기관 내에 독립적으로 설치한 상설위원회인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서를 승인받아야 하는데, 임상시험을 통해 기대하는 의료기기의 효능, 효과보다 더 중점을 둬서 보는 것이 환자의 안전이고, 그 전에 우선해서 지키려는 것이 바로 피험자의 권리, 안전 및 복지이다. 그렇게도 긴급한 코로나19 백신 허가를 진행할 때에도 3상 시험의 결과를 신중하게 살피는 것도, 코로나19 체외진단의료기기의 임상적 성능시험에서 검체 수를 충분히 요구하는 것도 환자와 피험자를 고려한 조치인 셈이다. 이처럼 임상시험 규정은 인류애의 발현, 인권의 수호 그리고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 도덕적 규범으로서 앞으로도 그 가치를 발할 것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나치 독일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거행된 국제 군사재판이다. 이 재판에서 발표된 ‘뉘른베르크강령’은 ‘피험자의 자발적인 동의’ 등 인체실험 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을 담았다. ‘뉘른베르크강령’은 이후 의학 연구·치료에서 사용되는 윤리 규정의 기본 지침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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