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0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20회

엄마가 좋은 이유
( 방사선의 어머니 Part 2. )

       ▲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
RA 자격증 교육 강사

방사선 또는 방사능이 처음 발견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들은 신세기를 여는 신비의 물질 혹은 만능 물질로서 각광받으며 많은 곳에서 사용됐다. X선으로 손이나 발을 찍는 것은 부유층과 사교계에서 필수 코스 같은 것이었고, 특히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의 경우는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성질로 인해 그 빛을 쬐면 몸에 좋고 젊어질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믿어졌다. 그녀가 남긴 수기에도 연구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밤중에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시료가 담긴 시험관이 작은 요정이 내는 빛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라듐을 완벽하다고 믿어서 연고, 치약, 버터, 우유 등의 일상용품에 섞어서 만들었고 식수에 넣어 마셨다. 여성들도 라듐이 들어 있는 스타킹,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사용했다. 그러던 와중에 1910~1920년대에 미국에 라듐 다이얼사를 비롯한 라듐 시계 회사들이 설립됐는데, 이들은 시계판 숫자에 라듐 페인트를 발라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야광시계를 만들어 판매했고 이 제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회사에서 여성 노동자는 ‘라듐걸스’ 또는 ‘천사’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작업 중 몸에 묻은 라듐 성분이 빛을 발해 신비스럽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라듐걸스는 시계판에 페인트칠을 할 때 정확하게 바르기 위해 붓을 입에 넣어 뾰족하게 만드는 ‘립 페인팅’ 작업을 반복했고, 일이 끝나고 나면 남은 라듐을 몸에 바르며 놀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라듐은 고된 일을 마친 여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유희거리가 됐고, 이 일을 해서 행운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가 빠지고, 다리뼈가 으스러지며, 아래턱이 통째로 빠지는 등 공포스러운 병이 라듐걸스에게 생겼고 목숨까지 앗아갔다. 이는 라듐의 구조가 칼슘과 비슷해서 칼슘인 척 가장하여 뼈에 축적되고 골수를 파괴했고, 빈혈과 백혈병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 실화는 케이트 모어의 저서 ‘라듐걸스’와 마리 퀴리에 대한 팩션(Faction)이자 국내 창작 뮤지컬인 ‘마리 퀴리’에서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편, 연구를 위해 폴로늄과 라듐을 작은 병에 담아서 갖고 다녔고 머리맡에 놓고 자기도 했던 마리 퀴리 역시 악성 빈혈, 만성 통증 및 인체 발열 기능을 포함한 생리 기능 정지로 고통 속에 살다가 죽었다. 과거에 그녀가 1톤의 폐광석에서 0.1g의 라듐을 추출했을 때, 0.1g의 라듐에 대해 1m 거리에서 1시간 있는데 따른 방사선 외부 피폭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그 피폭량은 일반인의 연간 허용선량인 1mSv(밀리시버트)를 훌쩍 넘긴다. 또한 100만분의 1g의 라듐을 흡입하더라도 80mSv(밀리시버트) 정도의 방사선 내부 피폭을 받게 되어 방사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연간 한도선량을 초과한
다. 그러므로 그녀가 연구하면서 받은 피폭량은 상상 이상이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유품인 실험노트, 논문, 요리책 등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다(참조로 라듐 226의 방사능의 반감기는 1,600년임). 사실 그녀를 비롯하여 그녀와 공동 노벨상 수상자인 남편 피에르 퀴리와 선배 과학자 앙리 베크렐 그리고 X선의 발견자 뢴트겐까지 모두 다 방사선 피폭 또는 방사선 차폐를 위해 사용한 납 중독으로 병마에 시달리다가 죽었는데, 이는 방사능 개발 선구자의 숙명이었고,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그 혜택을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정에 의거, ‘형광판식엑스선투시촬영장치’과 ‘진단용엑스선투시촬영장치’가 3등급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상술한 사항과 같은 맥락이다. 이 두 제품은 인체에 X선을 연속적으로 투과해서 인체 내부에 대한 동영상을 얻는데, 이 과정에 피폭량이 상당한데다가 X선을 검출하는 형광판이나 이미지 인텐시화이어의 X선 검출 효율이 최신 디지털 디텍터보다 낮은 관계로 좋은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피폭량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신용엑스선골밀도측정기’나 ‘부위한정용엑스선골밀도측정기’도 3등급인데 이는 이들 제품의 특성상 뼈의 밀도를 알기 위해 인위적으로 X선을 피폭시키기 때문에 피폭량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에 기인한다. 물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득하고,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의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 규정을 충족하는 이들 의료기기는 방사선량이 매우 적고 안전하기 때문에 믿고 사용해도 되지만, 방사선에 직접 피폭 되는 것과 지속적인 노출을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는 교훈은 앞서간 위대하고 헌신적인 과학자들이 목숨과 바꿔서 남긴 것이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리 퀴리는 남성 위주의 사회, 그중에서도 어느 곳보다 그러한 편견이 높고도 두터운 과학계에서 여성도 큰 대의와 목표에 충실하고 헌신적일 수 있고, 위대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뤄낸 선구자적인 여성이다. 

‘가난에 쫓겨가면서도 좋아하는 연구에 몰두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라는 그녀의 회상처럼 그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습했으며, ‘인생에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해해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라는 그녀의 어록처럼 그녀는 몸을 아끼지 않고 신물질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그 헌신의 결과로 발견된 라듐으로 인해 방사선 현상이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더 작은 
단위인 원자 수준에서 연구해야 하는 현상임을 밝혀냄으로써 과학 연구의 새 방향을 제시했고,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는 방사화학의 시대가 열렸으며, 그 결과로 방사선을 이용한 암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위대한 그녀가 남긴 ‘가족들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행복이다’라는 소박한 말은 그녀가 아내로써, 어머니로써도 역시 헌신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랜 격언이지만, 최근 들어 구시대적이라 취급받는 말로 ‘모성은 여성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마리 퀴리의 존재로 인해 이 말의 오류가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더 명백하게 증명된 것 같다. 여성은 ‘모성으로도’, ‘이성으로도’, ‘지성으로도’ 모두 강하다고……. 방사능의 단위에 그녀의 성인 퀴리(curie, 기호 Ci)를 부여한 것도, 그녀의 이름이나 그녀의 위인전 제목이 더 이상 ‘퀴리 부인’이 아닌, ‘마리 퀴리’인 것도 이제 세상이 ‘성별’이 아닌 ‘성취’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상징이자, 그녀에 대한 진정 어린 헌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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