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로 교수, 의료기기산업을 말하다⑧

■윤영로 교수, 의료기기산업을 말하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살길은 글로벌화(4)"

▲ 윤 영 로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의공학부교수

연재기고를 작성하면서 옛 자료를 찾다 보니, 2015년 5월 29일에 첫 기획 회의를 했다. 당시 브라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모두 난감했다. 우선 몇 번의 회합 후에 2015년 7월 30일 기본안을 마련했다. 그날 기획위원장으로 할 수 있는 답은 정부가 경비를 지원하면 브라질을 다녀오겠다는 것이 최선이었다. 위원 중에 몇 분이 놀라워하는 것을 2015년 8월 19일~31일까지 출장을 다녀오면서 알게 됐다. 두 번째 갈 때는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가야지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히 가야 하는 것 아닌가로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요즘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내과 관련 기사가 신문지상에서 언급되지만, 사실 의료기기산업을 26년을 관여하면서 감염내과와 국립중앙의료원과 연을 맺은 것 역시 브라질 스마트보건선 출장을 위한 예방 접종 때문이었다.

브라질 처음 방문 전에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황열, 파상풍, 장티푸스, 간염등 예방접종을 했다. 때로는 며칠 부작용으로 고생한 분도 있었다. 매번 출장 전에 감염내과에서 말라리아 약을 처방 받고, 상파울루에 도착해 매일 팀원들이 약을 복용했는지 확인하는 것 역시 책임자의 중요 업무였다. 기혼자도 있지만 아직 미혼인 대학원생도 있어서 당시 유행하던 지카바이러스에 대한 주의도 해야 했다. 한 명이라도 불상사가 나지 않고 과제가 종료돼 다행이다.

기획안 마련을 끝낸 후에도 1년간 예산안 확보 역시 또하나의 난관이었다. 어느 누구도 시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기에 초기에 관여했던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전 정재훈원장을 비롯해 당시 박천교 팀장, 그리고 시작과 진수식 끝을 같이 한 강성룡 단장(당시 팀장)과 연세대 응급의학과 황성오 교수, 일을 같이 한 (주)비트 조현정 회장, 전진옥 사장, 그리고 많은 직원들과 대학연구실 제자들과 학부형들께 지면을 통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먼길을 따라와 주고 수차례에 걸친 회의가 있었고, 문화와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때로는 출장에서 돌아온지 6개월 만에 다시 갔을 때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에 짜증도 나지만 묵묵히 참아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아마도 이런 일은 국외 시장을 새롭게 여는 개척자들 외에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과 경험이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성과 위주의 우리의 평가제도 또는 실적 위주의 우리나라 회사 문화에서 새로운 것을 개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전 출장에서 한국의 각 회사들이 보낸 의료장비들이 현지에 도착했지만 또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았다. 브라질의 물류 시스템과 세금 문제로 의료장비들이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리오에 묶여 있거나, 장마로 인해 운송이 늦어졌다. 또 어떤 의료장비는 항공기로 운반이 불가능하거나 때로는 현지 규정상 의사가 직접 수령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지 지사를 포함해 중남미, 미국 지사, 한국 본사와 연락하며 해결해 나갔다.

▲ (그림1) 브라질 스마트 보건선 성공을 위한 간절한 기도-상파울루 한인 성당
▲ (그림2) 브라질에서 BTS 한류 열풍
▲ (그림3) 현지 디자인과 프린팅 업체들과 함께 배에 부착할 태극기와 기관들 심벌 제작
▲ (그림4) 태극기를 부착 후 거수경례

마지막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과연 스마트보건선과제가 어디까지 진척돼 있을까, 지구 반대편의 상황이기에 겨울철인 우리와 달리 여름철 우기이기에 페인팅은 완료돼 있을까 등 여러 걱정이 앞섰다. 상파울루에 도착해 매번 들린 한인 성당에서 간절한 기도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림 1). 페인팅을 맡은 조선소 사장 딸이 BTS를 좋아해 사비로 앨범과 관련 선물을 전달했는데 이것 역시 도움이 됐다(그림 2). 마나우스에 도착 즉시 달려간 조선소는 그간 노력했지만 우기로 인해 페인팅이 완전하게 끝마쳐 있지 않아 밤샘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배에는 태극기, 각 기관의 마크, 상대 기관의 국기와 심볼(그림 3)을 몇 번을 반복해 붙였다. 그렇게 저녁 늦은 시각, 그 앞에서 팀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온몸에 흐르는 전율은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그림 4).

▲ (그림5) 진수식장으로 진입하는 스마트 보건선
▲ (그림6) 스마트 보건선 공로를 기념한 감사패

다른 한 쪽에선 비트컴퓨터의 조중권 선임과 한지호 박사과정이 인터넷 상황이 열악한 가운데 서울과 인터넷을 통해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하고 시스템 안정화 체크를 완료했다.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새벽 5시에 배에 올라 전날 주브라질 한국대사가 마련한 김밥을 먹고 늘 출장길에 말도 통하지 않는 NOVOTEL 매니저가 준비한 라면을 먹으며, 진수식장으로 이동하면서 느꼈던 짜릿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그림 5). 그리고 팀원을 대신해 감사패를 받을 때는 그 어느 표창과 감사패보다 의미가 있었다(그림 6).

이번 과제를 수행하고 앞으로 정년을 2년 반을 앞둔 대학에서는 원로라는 칭호를 듣는 입장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지난 26년간 마지막 프로젝트이기에 몇 가지 언급을 하고자 한다.

첫째, 앞으로 말로 연구 업적을 과장하는 연구자보다, 실질적으로 결과를 낸 연구자들을 배려하는 연구문화 정착이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 간 약속이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감이 있었고, 이 과제를 잘 수행함으로써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중남미 진출에 작은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시작했다. 이 같은 마음은 사회에서 만나 절친이 된 조현정 회장도 같았다. 또 전진옥 사장이나 황성오 교수도 동일했다.

그러나 과제 선정 시작 평가부터 ‘왜 비즈니스 타느냐 , 때로는 현지 사정을 모르고 ‘왜 늦어지냐’, ‘애당초 설정한 원격을 왜 못하느냐’등등 지적과 질책이 있고, 지난해는‘브라질과 60주년 수교인데 언제 끝낼 수 있느냐’는 재촉도 있었다. 특히 무관심은 대응하기조차 힘들었다.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연구원들에게는 프리미어 이코노믹석을 배정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진수식 행사장에서의 KBS 기자와 인터뷰는 단지‘죄송합니다’한마디로 통편집되어 방송한 KBS뉴스는 실제로 일한 연구자의 노고를 알려야 했다.

필자는 미국 연방 공무원의 경험과 지난 26년을 의료기기산업에 전념해 양국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나라도 연구자와 연구팀을 존중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책임자는 그 뒤에서 노력하는 젊은 연구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에 대한 주위 분들의 따뜻한 한 마디 하는데 인색하다는 것이 늘 아쉬웠다.

특히 말로만 자기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연구자보다 산업화에 공로가 있는 연구자를 배려하는 연구문화 정착이 이루어져야 한다. 흔히 기초기술과 원천기술 개발에 투자를 했는데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필자에게 묻는다. 반대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기초와 원천 기술을 모르고 산업화를 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Engineering Research Center(ERC)의 시작은 미국이다. 1985년부터 1990년 National Science Foundation(NSF)이 처음 선정한 18개 대학 중 하나가 필자가 졸업 한 퍼듀대학이다. 과연 우리나라 ERC 특히 의료기기 관련 ERC의 산업화 실적은 무엇인가 묻고 싶다. 재학 시절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엔지니어 주간에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국 전체 엔지니어 17명 중에 한 명이 퍼듀 출신임을 언급하면서 대학이 산업화에 일익을 담당함을 강조하고, 대통령이 대학 내 비행장 활주로를 이용해 온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제는 연구다운 연구를 해야 한다. 연구자나 회사원들에게 애국심이나 애사심을 요구하기 보다는 ‘90년대 생이 온다’는 책과 같이 세대 변화에 대한 그들을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 변화가 중요하다.

둘째, 정부 지원의 R&D 사업이 중요하지만 해외의 소외 계층에 대한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내 의료기기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프로젝트 발굴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은 어떻게 발전했나? 자세히 보면 답이 보인다. 보험제도는 초기에 일본에서, 의료기술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에서 갖고 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의료기기 분야는 많은 임상의들이 연구년 기간을 미국 유수의 대학 병원에서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 사용하던 의료기기를 배우고 경험하면 자신이 소속된 병원에 추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국산 의료기기 사용률을 높이려고 해도 대학병원을 비롯한 상급병원에서 사용률은 10% 미만이다. 이번 과제도 연구과제라기보다 정부 차원의 지원사업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과제와 ODA와 같은 지원 사업으로 진행을 했을 때 연구 책임자가 갖는 부담감은 다르다고 본다. 브라질은 국가별 GDP를 고려할 때 ODA 대상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독일의 경우는 이런 나라를 무상 지원한다. 왜 우리는 못 하는지 묻고 싶다.

▲ (그림7) 아마조나스 주 지역 방송국의 관심

2020년 2월 13일. 브라질 스마트보건선 진수식이 거행되는 날은 아마조나스 주정부가 있는 마나우스 시의 모든 방송국과 신문사가 몰려들었다(그림 7). 현 아마조나스 주지사가 방송인 출신이라는 것도 있지만 아마조나스 주에서 처음으로 보건선에 의료 장비를 설치하고 선내에서 의료정보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등록부터 진찰까지 통합 관리하는 경우이기에 보건선과 대한민국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는 같이 참여한 한인 커뮤니티도 놀랄 정도였다. 필자는 브라질을 십여 차례 다녀오면서 걱정된 점은 중국이 브라질에 투자하는 물질적 위압감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일본과 중국에 협공 당하는‘브라질 한인커뮤니티’”와 같은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한인이 운영하는 봉제 산업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한인들이 견디지 못하고 역이민으로 한국, 주위 중남미나 미국으로 재이민을 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 (그림8) 아마조나스주지사 KBS 인터뷰
▲ (그림9) 주브라질 한국대사 KBS 인터뷰

필자가 느끼는 브라질 경제는 당분간은 어려울지 모르나 지하자원이 풍부하기에 이런 기회에 스마트보건선을 정부 차원에서 몇 대 더 만들어 주고 자원을 갖고 오는 방법도 제안하고 싶다. 기회는 좋은 조건일 때가 아닌 어려운 여건일 때 투자를 하는 것이 승산이 있다. KBS 뉴스에서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지사(그림 8)와 주브라질 한국대사(그림 9)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지사와 마나카푸르 시장을 비롯한 그곳의 보건 담당자들의 보건선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모든 해외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속 사업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은 어려운 시기에 외국 원조를 국민 모두가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보아도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어려운 시기에 동참하는 국민 의식이 대단하다고 본다. 그러나 ODA 사업을 해본 경험자들에게 들으면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몇 년 후에 가보면 무용지물이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는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몇 년간 관리할 수 있는 후속 사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에 새로운 장비가 들여와도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다든지 경미한 고장으로 사용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이라크 쿠르드 지방정부의 복지부 장관 초청으로 2007년 9월 6일부터 6박 7일간 현지 보건의료체계를 시찰하면서 경험한 바이다. 이 사업이 2월 29일로 종료됐기에 필자나 참여한 팀들이 개인 경비를 들이지 않고는 현지에 가 볼 수가 없다. 혹 작은 고장이나 사용 미숙으로 제대로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면 시작을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 있고, 그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넷째, 신뢰와 네트워크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필자와 같이 참여한 동료들이 쌓아 놓은 그간의 네트워크는 정말 어렵게 쌓은 것이다. 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물론 다른 분들이 하는 국제협력 사업을 비롯해 필자가 최근 정년을 앞두고 정부와 학회 그리고 대학에서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초기에 많은 지인들이 열정을 갖고 시작한 일들의 흔적을 보면서 ‘과연 그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라고 생각해 본다. 행정은 역사이다. 역사를 무시하고 새롭게 창출한 것이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고 본다. 그중에 신뢰와 네트워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 (그림10) 주지사와 친구 같은 분위기

현지 주지사는 주브라질 한국대사에게 “윤교수는 현재 아마조나스 주와 마나카푸르시의 유명 인사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그 말을 받아 농담으로 “제가 주지사 선거에 나올까 겁나시죠?”라며 친구 사이 같은 분위기(그림 10) 속에서 주고받았다. 동거동락하던 아마조나스 주나 마나카푸르 시의 친구들을 멀리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간의 어려웠고 고마웠던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또 마지막 출장에서 통역을 지원해 준 삼성마나우스 법인과 2007년 전시에 이라크 출장과 4년 전 지카바이러스등 여러 좋지 않은 소식에도 출장을 허락해 준 가족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런 기회를 준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이기에 국민과 정부에 감사를 드린다.

▲ (그림11) 시스템 엔지니어 역할
▲ (그림12) 본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원들과 함께

이번 브라질 스마트 보건선사업, 그리고 본인이 제안하고 시작했던 기업연계형연구인력양성사업(산업부에서 중소기업부로 이관, 전담기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필자가 26년 의료기기 사업을 하면서 가장 의미가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우게 한 사업이었다. 총괄 책임자, 비즈니스맨, 때로는 시스템 엔지니어(그림 11)등 1인 다역을 하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도와주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그림 12) 감사드리며, 브라질 스마트 보건선 연재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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