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3화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13화

Listen To My Heartbeat!
200J만큼 강렬한 심장충격기 이야기 - Part 1

▲ 임 수 섭
LSM 인증 교육원 대표
의료기기 법정 품질책임자
RA 자격증 교육 강사

TV나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의료기기는 무엇일까? 일반 진찰 장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청진기나 체온계부터 교통사고 등의 외상 환자 등장 씬에서 볼 수 있는 휠체어와 환자 침대 그리고 비련의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린 것을 발견할 때 사용되는 MRI나 CT를 보통 쉽게 떠올리겠지만, 지금 소개할 의료기기의 아우라를 능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심장충격기'. '심실제세동기'로도 불리는 이 의료기기는 주로 의학 드라마나 액션 영화에서 환자나 주인공이 사망 직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단골로 등장한다. 이때 등장인물의 생사여부를 결정함으로써 극중 전개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것의 존재감과 작품 내의 중요도는 여타 의료기기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2010년대 원조 짐승돌 2PM이 소녀팬들의 '심장을 뛰게(Heartbeat)' 만들었듯이(?), 만인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심장충격기는 대표적인 응급 의료기기 중에 하나로, 말그대로 세동(細動)을 제거(除)해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게 만드는 장치이다.

이런 심장충격기는 외부의 충격 등 모종의 이유로 심장 세포의 '전류 신호 발생 기능(Pacemaker)'에 이상이 발생해 심장 전체에 혼란이 발생함으로써 심장이 제대로 박동하지 않고 가늘게 떨리는 심실세동이 발생할 경우, 순간적으로 강한 직류 전류를 흘려 심장의 박동을 완전히 멈추게 한다. 그리고 이후 심장의 전류 신호가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 심장 세포가 다시 작동해서 전류 신호를 정상화시키도록 만든다.

이는 심장충격기는 '멈춘 심장에 전기 자극을 가해 다시 뛰도록 만드는 장치'라는 잘못된 상식과 달리 '심근이 제멋대로 뛰는 상태(심실세동)'를 강력한 전기충격을 가해 심근을 '인위적으로 정지'시키고, 심장이 '스스로 다시 뛰는 능력(자동능)'을 이용해 심장을 온전하게 뛰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심장이 완전히 멎어서 환자감시장치의 심전도 그래프가 일직선을 그릴 때 제세동기를 사용하는 장면은 이론적으로는 맞지않다. 왜냐하면 심장충격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심전도 그래프가 미약한 파동으로 과도하게 빠르게 뛰는 등 정상적인 패턴을 벗어날 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긴급한 상황에서는 심정지와 심각한 심실세동을 완벽하게 구분하기 힘들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장충격기를 쓸 수는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심장충격기는 심장을 일시 정지시키기 위해 전류를 사용하는데 이를 에너지로 계산하면 200J 이상이 되고, 이를 환자에 적용할 때 의료진이 그와 접촉하고 있으면 감전사가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Charge-!', 'Clear-!' 라는 대중매체 속에서 심장충격기를 사용할 때 쓰는 대표적인 단어는 이런 심장충격기의 강력한 위력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강력함이 인상적으로 연출된 두 편의 영화가 있는데 첫 번째가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 중의 하나인 '닥터 스트레인지'이다. 영화 속에서 죽을 위기를 맞은 스트레인지가 외과의사이자, 그의 아름답고 지적인 연인인 레이첼 맥아담스에 의해 소생 수술을 받는 동안, 그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와 적의 영혼과 대결을 펼치는데, 스트레인지가 질 위기에 빠진다. 이때, 레이첼이 스트레인지의 몸에 심장충격기를 사용해 그 에너지가 스트레인지의 영혼을 거쳐 적 영혼까지 전달시킴으로써 적에게 타격을 주는 장면은 심장충격기의 위력을 영화적 상상력과 잘 결합시킨 예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인상적인 예는 '007 카지노 로열'이다. 여기서 제임스 본드는 적과 텍사스 홀덤 포커 대결을 펼치는데, 적이 본드가 마시는 마티니에 디곡신이라는 독극물을 넣어 심실성 빈맥을 일으켜 본드를 심정지로 사망시키려고 한다. 이때 본드는 황급히 자신의 차로 돌아가 해독제 키트를 경정맥에 주사하고, 심장충격기를 양쪽 가슴에 연결하고 작동 버튼을 누르지만 작동하지 않아 정신을 잃고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고혹적인 본드걸, 에바 그린이 심장충격기 단자에 선을 연결하고 버튼을 눌러 제세동을 성공시키고, 그 덕분에 부활한 본드는 포커판에 복귀해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처럼 실제 현실과 허구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심장충격기는 의료기기 규정 관점에서 중요한 3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중증도의 잠재적 위해성을 가진 의료기기' 또는 '고도의 위해성을 가진 의료기기'라는 것이다. 이는 심장충격기가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또는 민간 기술문서심사기관에서 승인하는 1, 2등급 제품과 달리, 여전히 식품의약품안전처(엄밀히 말하면 그 산하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의료기기심사부)가 직접 심사 및 승인하는 3, 4등급 제품임을 의미한다. 또한 심장충격기는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 고시에 따라 인체 외부에서 사용하는 것과 인체 내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50Ω의 시험 부하에서 최대 전기 출력이 360J 이내인 '저출력심장충격기'와 360J 이상인 '고출력심장충격기'가 대표적인 인체 외부에서 사용하는 심장충격기이자, 3등급 의료기기이다.

반면, 삽입된 전극을 통해 전기 충격을 심장에 보냄으로써 심방이나 심실의 세동을 제거하는 데에 사용하는 기구인 '이식형심장충격기'는 인체 내부에서 사용되는 심장충격기이자, 위해도 최고 등급인 4등급에 이르는 '고도의 위해성을 가진 의료기기'이다. 예전에 필자와 식약처 구강소화기기분과와 AHWP 위원 활동을 했던 타회사 업계동료는 '의료기기 RA 업무를 안다고 한다면 최소한 3등급 이상의 제품을 다뤄봐야죠~'라고 말한 바와 같이 심장충격기의 인허가는 결코 만만치 않다. 인체 외부 사용 제품일 경우, 공통규격인 IEC60601-1, 보조규격인 IEC60601-1-X 시리즈 및 개별규격인 IEC60601-2-4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안전 요구사항인 ISO10993을 만족시켜야 하고, 인체 내부 사용 제품일 경우, 앞서 말한 규격들이 더 까다롭게 적용될 뿐만 아니라, 'Active implantable medical devices(AIMDs)'로 분류됨에 따른 ISO 14708(또는 EN 45502) 규격, MRI 관련한 안전성 요구 사항인 ISO 10974 및 이식형전극이 있을 경우에 따른 ISO 11318 규격까지 충족해야 한다. 즉, 만약 누군가가 심장충격기의 허가 업무를 진행한다면 그(또는 그녀)는 RA업무의 끝판왕(?) 혹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특징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1>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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