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료인, 의료기기 개발 및 개선에 관심 많아 협력시스템 구축돼야

■ 의료기기산업 육성 열린 생태계 조성 방안

"대형병원의 국산 의료기기 사용위한 장려 정책 필요"
병원·의료인, 의료기기 개발 및 개선에 관심 많아 협력시스템 구축돼야

▲오승준
서울대병원
의료기기혁신센터장

의료진과의 협력 강화
병원에서 의료진은 의료기기 개발과 불가분의 역할로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의료진은 사용자와 구매자이기도 하고, 의료기기 개발 전 주기 프로세스에 있어서 임상현장에서 최신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으며, 학회 활동을 통해 새로운 의료기기에 대한 학계의 최신 식견과 동향을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임상시험은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의사는 논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기기혁신센터에서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의료기기 개발 관련 설문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는데, 다수의 의료진이 의료기기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보고 싶다는 응답을 했다. 이는 국내 최고 의료진들은 국산 의료기기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대형 대학병원에서는 90% 넘게 외산 의료기기 제품들을 쓰고 있다. 국산 의료기기시장 규모가 증가하고 국가적으로 많은 연구개발 예산을 활용하고 있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율시장경쟁체제에 맡기기보다는 대대적인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며, 국산품을 장려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의료기기 개발은 회사에서 주도하는 경우, 주로 외국에서 생산해 유통되는 기존제품의 카피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가 된다. 반면, 병원이 주도하는 경우, 아이디어는 있으나 상품화/현실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의료기기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는 미국 미네소타, 메릴랜드 주가 그러하듯, 의료기기 개발 과정에는 의료인, 공학자, 제조사 간에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들의 각각 역할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는 것이 의료기기산업 발전과 의료기기 연구 활성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새롭고 유용한 의료기기 개발은 병원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원 또는 의료진의 의견에서 출발해 의료진, 특허 전문가, 공학자, 산업계가 모여서 의료기기를 개선하고 개발하는 협력 구도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병원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빠른 피드백이 중요한데 때로는 많은 관찰과 경험의 공유나 토의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병원의 접근성과 인접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병원 근처 또는 병원 내에 이런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것이 협업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의료진에 의한 사전 사용성 검증 증대 필요
현재의 국가과제들은 모두 하이테크(Hi-tech) 지원을 위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병원에서 구매가 이뤄지는 것은 하이테크 장비가 아니다. 하이테크 장비는 시간을 두고 충분한 검증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고가이므로 현실적으로 구매는 힘들다. 기본기에 충실한 중간기술(Middle tech) 의료기기가 가격도 비싸지 않고 위험부담이 없으므로 오히려 의료진들이 구매하기 가장 좋은 품목이 될 수 있다. 기본기만 충실하고 가격경쟁력이 있다면 충분히 구매 의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기본기에 충실한 미들테크(Middle-tech) 제품들도 개발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기획할 때 충분한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연구개발(R&D) 유형에 따른 차별화된 접근법 마련도 중요하다. R&D 의료기기는 2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원천기술 개발 및 세상에 없는 ‘World-first’ 의료기기 창출을 위한 선구적인 의료기기 R&D 분야다. 두 번째 유형은 기존 의료기기를 개량하는 계통의 R&D 형태로, 안전성이나 유효성 또는 두 가지 모두를 개량해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는 종류의 R&D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특수 연구소의 공학자들이 병원 의료진들과 공동 개발하는 경우가 주를 이루며, 주로 국책과제로 펀딩되는 구조다. 제품 아이디어를 의료진으로부터 받고 의료진들에 의해 시제품 테스트를 받으며 국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4차산업 형태의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3D 프린팅 같은 경우는 비교적 소규모 투자로도 충분히 상품화가 가능하다.

두 번째 유형에서 안전성이나 유효성을 증대하고자 한다면 임상적인 아이디어가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 의료진들로부터 나오는 사용 편의성의 증대나 기능 개선에 관한 의견을 제품에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 발달 단계를 고려하면 이러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 제조자는 개발단계의 비용뿐 아니라 출시 전과 후의 잠재적 비용 및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사용 적합성 테스트를 거치지 않는다면 개발 전 비용을 조금 절감할 수는 있으나 제품이 출시된 후에 하자가 발견될 경우 추후 소요될 비용은 훨씬 더 크게 된다. 즉, 사용 적합성 테스트는 개발 초기에 시행될수록 인력, 시간,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사용 적합성 테스트를 수행하기 가장 적합한 시기는 개발 전이며, 그 중에서도 ‘설계 전’단계다. 이미 개발 완료된 제품은 기기를 개선하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개선하기 더욱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사용 적합성 테스트는 실 사용자(의료진 등), 환자, 제조업자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환자의 경우에는 의료기기 사용 오류로 인한 잠재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제조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개발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부가적으로 직접 소비자의 의견을 더욱더 반영한 더 사랑받는 기기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산업체가 당면한 의료기기 임상시험 허들 및 정부 지원 건의 
의료기기 임상시험은 새로 개발된 의료기기가 병원의 임상 현장에 쓰이기 전에 거쳐야 할 가장 큰 관문이다. 이에 관해 보건복지부 ‘임상연구의 요양급여 적용에 관한 기준’고시가 2018년 5월에 발표돼 시행 중이다. 이에 따르면, 임상연구 시작일 이전에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해당 임상연구에 대한 요양급여 적용 결정 신청을 해야 한다. 

이 고시에 따르면, 산업체 주도 임상연구는 공익적 목적이 아닌 한 시술료는 회사가 보험비용적용이 아닌 일반 수가를 적용 받아야 하며 의뢰자인 회사가 100%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뢰자 주도(SIT)로 협심증에 대해 관상동맥 스텐트(stent) 비교 임상시험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 연구는 아주 공익적 목적을 가진 연구라고 할 수 없다. 협심증이 희귀질환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환자들의 수술 전 검사, 입원료, 병실료, 식대, 항생제값, 수액처치료, 시술 전 관상동맥혈관촬영술 촬영비, 심혈관 stent 유치시술료, 퇴원 후 추적 혈관촬영비용 등 모든 비용을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환자 식대까지 부담해야 한다. 

상기 고시는 의료기기 임상시험의 현실과 국내 의료기기산업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임상시험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의약품 임상시험을 떠오르게 되므로 ‘의약품’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고시인 듯하다. 의료기기 임상시험은 의약품과는 매우 다르다. 많은 의약품 임상시험은 환자가 입원하지 않고 외래 진료실에서 시험이 진행되며, 기본적인 혈액검사 위주로 환자를 선별하게 되므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임상시험 진행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치료용 의료기기 임상시험의 경우, 위의 고시가 그대로 적용되면 회사가 부담하게 될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의료기기산업 발전 측면을 고려해 양쪽의 입장을 절충한 아래와 같은 차별성 있는 보험적용을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스텐트 시술을 받는 모든 환자들은 반드시 입원하고 식대, 항생제를 맞게 된다. 이 비용들은 임상시험을 한다고 일부러 추가되는 것은 아니므로 전액 보험 급여로 하고, 다만 임상시험을 함으로써 순수 추가되는 비용인 심혈관 스텐트 유치시술료, 스텐트 자체 비용 정도만 일반 수가로 제조자가 부담하는 방안이다. 

보험당국에서는 국민이 내는 의료 보험비로 운영을 하면서 임상시험까지 지원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 또한 중요하므로 정부에서도 의약품 임상시험에서 적용하는 기준을 의료기기 임상시험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맞는 균형 있는 방안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에 의료기기산업체에서 좀 더 적극적인 대정부 제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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