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로 교수, 의료기기산업을 말하다 ⑤

■ 윤영로 교수, 의료기기산업을 말하다 ⑤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이 살길은 글로벌화(1)"

▲ 윤 영 로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의공학부교수

필자는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나갈 길은 세계 시장에 우뚝 서기 위한 글로벌화라 생각한다. 이는 다만 기업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산업 현장에 나갈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서도 대학이나 대학원 교육 현장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지난 25.5년 동안 필자가 생각하고 관여했던 교육 현장에서 글로벌화와 산업적인 면에서 직접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하고자 한다.

학생들은 해외 학회 참여를 통해 글로벌 경험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독일 의료기기 전시회 ‘메디카’, 두바이 아랍헬스 전시회, 중국 상하이와 심천에서 열리는 의료기기 전시회,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Hospitalar’ 전시회 참가를 통해 세계 의료기기 변화 추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글로벌화는 의료기기 관련 분야에 관여하는 중앙·지자체 공무원에게도 역시 중요한 팩트가 될 수 있다. 글로벌화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이고 몸에 배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서로의 신뢰 속에서 커간다고 생각한다.

1994년 귀국해 교단에 첫발을 내디딜 때 스스로 약속한 두 가지 중 하나가 의공학부 학생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매년 외국 저명인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새롭게 채용되는 후임 교수들에게 가능하면 실험실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집안 사정으로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 은사이신 김봉렬 교수님이 아버님을 뵙고 유학을 권유한 계기로 유학이 아닌 이민 형태로 미국을 갔다. 그곳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테크니션부터 엔지니어, 연구원, 때로는 주유소 펌프와 메카닉을 하면서 경험했던 13개의 다른 일들은 정년을 2년 반 앞둔 지금까지 모든 일에서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학위를 받기 위해서보다 살기 위해 생활 전선에서 익히고 배운 ‘Culture background’ 영어가 1994년 귀국 후 해외를 다니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러한 경험을 대한민국 의료산업을 주도해 나갈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것이다.

또한, 기업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판로를 개척하고 벤처 기업과 젊은이들의 창업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제품의 경쟁력도 중요하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제품의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한 홍보, 즉 국외 전시회에 출품해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국외 전시회에 3년 정도를 연속적으로 나가야 비로소 회사와 제품의 이미지를 세계 시장에 알릴 수 있고, 세계적인 바이어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코트라 권평오 사장이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으로 있을 때도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기업을 위한 전시회 비용 지출은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할당해줘야 한다. 두바이 전시회에 참석했을 때 기재부 출신인 두바이 총영사에게 이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중소벤처기업부 김학도 차관이 산자부 국장 시절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기업과 간담회를 가질 때, 한 기업의 사장은 독일 메디카에서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만든 전시관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불평인즉 전시장을 근사하게 만들기만 하고 기업들에 주는 지원은 적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강원도 원주 의료기기산업 육성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기업은 이러한 불평보다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다른 정부 대비 우리나라 정부가 기업에 지원하는 제도는 월등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힘을 합쳐 정말로 문제 되는 것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현재는 어떠한지 모르나 당시 정부로부터 받은 20~30개 업체 지원 경비를 80~90개 업체에게 지원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 홍보가 날로 치열해 지는 가운데 나라마다 만들어 놓은 개별 국가관 모습 역시 경쟁이 심했다.

다음으로, 필자가 그간 참여한 국제 협력의 예를 통해 퇴임 후인 2.5년 후에도 누군가가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대학과 기업 그리고 지자체, 중앙 정부를 매개체로 합심해 보건의료산업 발전과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속해 나가기를 바란다.

첫 번째, 1996년 제18회 IEEE EMBS(미 의공학회) 학술 대회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개최됐다. 당시 기조 강연자는 일본 의공학회 회장인 요코하마대학의 가지야 교수였다. 네덜란드에서 한 약속으로 가지야 교수는 1996년 11월에 개최된 대한의용생체공학회 추계 학술대회에 참석 후인 11월 18일(그림 1) 늦은 저녁 시간에 상하 각 일 차선으로 구분 경계가 없는 열악한 고속도로를 달려 필자가 있는 연세대학교 의공학부를 방문했다. 이것이, 필자가 연세대 의공학부에 부임한 후 외국 저명인사를 초청해 강의하게 된 첫 번째 사례다.

▲ 그림 1. 가지야 교수님 연세대학교 의공학부 강의

또한, 가지야 교수의 초청으로 1997년 요코하마대학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일본은 1985년 테크노파크 법령이 통과되고, 중앙정부 또는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재단을 만들어 산업단지를 구성했다. 이러한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보았다. 방문 당시에는 산업단지의 역할이 뭔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퇴임한 원로 교수이신 윤형로 명예교수님과 함께 요코하마 현장에 다시 간 것이 현재의 강원도 원주의료기기산업단지의 모태가 됐다. 또 지역 주민에게 강원도 원주 의료기기산업을 이해시키기 위해 16mm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홀로 산호세 시청부터 창업 지원 시설을 직접 취재하고 지금은 미국에 있는 원주 MBC 정수영 PD와 번역을 해가면서 만든 기획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도 있다. 또한, 2005년 당시 정창영 총장 요청으로 연세대학교 120주년 행사를 서울서 김용민 교수, 니혼고덴 야리다 본부장, 테르모 가다야마 연구소장, 친구이자 동료인 Metin Akay와 함께 원주가 아닌 서울에서 행사한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몇몇 학생들의 질문에 감동한 연자들이 계획에도 없던 패널 토론을 한 적도 있는데, 이 또한 계속된 글로벌화의 결과다.

가지야 교수는 후에 국제 의학 및 생물공학 연합(IFMBE) 회장을 역임했고, 2006년 대한의용생체공학회에서 한양대 김선일 교수가 중심이 되고 필자가 전시분과 위원장으로 동분서주하며 WC2006을 유치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이는 대한민국 의공학이 한 단계 도약 발전할 수 있는 계기였다. 필자는 또한 2006년부터 2년간 IEEE EMBS 선출직 이사로 2013년 IEEE EMBS 서울 유치를 주도했다. 2013년에는 아깝게도 일본이 유치했으나, 2013년 IEEE EMBS 유치를 시도하지 않았으면 2017년 제주에서 개최한 IEEE EMBS 유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 그림 2. 야리다 니혼고덴 본부장의 구세군 지인 만남

두 번째, 니혼고덴 야리다 본부장이 30년 전 인연을 갖고 30년간 만나지 못한 구세군이었던 지인(그림 2)을 찾기에, 백방으로 수소문해 서울에서 30년 만에 만남의 기회를 얻게 했다. 이에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하여 요청한 것이 대학원생을 방학 중에 니혼고덴 산업 현장을 경험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년간 방학 기간에 니혼고덴을 경험하고 온 당시 대학원생들은 창업(그림 3,4)도 하고 (재)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에 근무하다 최근에 이직도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의 서로 간의 신뢰는 역시 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 그림 3. 니혼고덴 야리다 본부장과 가다야마 소장의 원주 방문
▲ 그림 4. 니혼고덴 대학원생 파견

세 번째, 2005년 강원도 원주 의료기기산업 초기에 중국 허페이에서 열린 과학도시연합회의(그림 5)에 당시 김기열 원주시장과 중국을 처음 방문한 것 역시 새로운 충격이었다. 한편은 계획도시, 다른 한편은 낙후 지역. 강원도 원주를 향후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지 고민하고 생각해 볼 기회가 됐다. 김기열 시장 시절 필자는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위한 대외협력국장 일을 했다.

▲ 그림 5. 중국 허페이 과학도시연합회의에서 당시 김기열 원주시장과 강원도 원주의료기기 산업 발표

네 번째, 지금은 수입 의료기기에 대해 해외에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심사를 등급에 따라 심사 기관이나 식약처 직원들이 나가고 있으나, 2004년 GMP를 도입하고 3년 유예 기간을 주어 2007년 모든 의료기기에 GMP가 적용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는 수출할 때 미 식품의약국(FDA) 등으로부터 심사를 받았다. 반면, 우리는 해외로 심사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IEEE EMBS 선출직 이사로 있던 2년간 같은 이사로 있던 FDA 직원 중 한 명이 일본에서 1년, 중국에서 6개월을 근무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이와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자금력이 된다면 교수들의 연구년을 정부 지원으로 FDA나 다른 나라의 규제기관으로 보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식약처에서 타 기관으로 해외 파견 나가는 것이 꽤 고무적이다.

다섯 번째는 2005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활동 중에 당시 류호영 부단장과 현재 복지부 실장인 당시 의료기기 담당 양성일 과장과 함께 독일 메디카 전시회(그림 6)에 참가한 것이다. 국가 정책에 참여할 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백 마디의 말보다 실제 현장에 가서 같이 보고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다. 양성일 실장과는 2017년 보건산업정책국장 시절 의료기기산업발전기획단 민관공동단장으로 국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일할 기회를 가졌다.

▲ 그림 6.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독일 메디카 참관

또한 2017년 8월 28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서울대 김희찬 교수와 함께 ‘의료기기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공청회(그림7)에도 참여했다. 이 또한 2019년 4월 30일 통과된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 그림 7.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 공청회

여섯 번째, 산업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하고 현재는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된 대학원 현장밀착형 기업연계형 연구인력양성사업으로 연구생들이 FDA 교육을 미국에서 받고, 국외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사례 중 하나다. 5년간 본 사업을 통해 산학과 해외를 경험한 연구자들 70%가 현재 의료기기산업 현장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은 좋은 선례이다.

일곱 번째, 이라크 아르빌을 방문한 일이다. 원주에 산업 시찰을 온 쿠르투족 중(그림 8)에 기독교 교인이며 정신과 의사인 Wan Sliwa의 도움 요청이 있었다.

▲ 그림 8. 쿠르트족 원주 방문

국군의무사령부의 초청을 받아 아르빌(그림 9,10,11,12)을 방문했다. 현지 보건소 시찰 등 일주일간의 아르빌 생활은 때로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일도 있었다. 휘발유가 나오는 나라에서 길에서 휘발유를 파는 어린이들과 열악한 현지 의료시설 견학을 통해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시스템에 감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그림 9. 이라크 아르빌 방문
▲ 그림 10. 이라크 자이툰 병원 방문

자이툰 부대 철수로 구체적인 안이 실현되지 못했지만, 부대가 철수하지 않았다면 의료기기산업의 불모지인 아르빌에 여의도 면적에 달하는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중동 전초지를 만들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내가 있기에 내가 관여하는 산업이 있는 것이 아닌, 내가 관여하는 산업이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국내 의료기기산업에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라크 아르빌 방문이었다.

▲ 그림 11. 이라크 아르빌 방문
▲ 그림 12. 이라크 아르빌 방문

대한민국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아프리카 등 오지에 수출 아이템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뛰어다닌 무역의 전사들이 있고, 대한민국 의료기기산업 초기에 1세대들의 노고도 있을 것이다. 세계 여러 곳에 낙후된 보건의료 현장에서 국내 의료기기의 활로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산학연관이 똘똘 뭉쳐 국내에서 아웅다웅하는 것이 아닌 품질 좋은 의료기기를 만들어 세계로 나가고 대학의 원천 기술이 상업화되고, 대학의 인재들을 학회뿐만이 아닌 국외 의료기기 전시회 참여 기회를 확대해 도전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본 기고를 통해 필자가 25.5년을 지나오면서 말 못 할 어려움도 있었지만, 대학에서의 글로벌화와 기업의 글로벌화, 지자체의 글로벌화, 중앙공무원과의 글로벌 경험 등을 공유하려 했다. 한편으로는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신뢰의 바탕은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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