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6회

■ 대중문화 속의 의료기기 이야기 - 6회

"지멘스 VS GE - 의료기기 역사의 최강 라이벌"

▲ 임 수 섭
LSM 인증교육원 대표

인류 역사는 라이벌 대결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 스키피오와 한니발, 시저와 폼페이우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유방과 항우, 웰링턴과 나폴레옹, 처칠과 히틀러, 모택동과 장개석, 폰 브라운과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코롤료프, 케네디와 닉슨 등이, 우리나라의 경우, 김춘추와 연개소문, 왕건과 견훤, 이성계와 최영, 이방원과 정도전, 수양대군과 김종서와 같이 말이다. 대중문화로 가면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마돈나와 신디 로퍼,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 테일러 스위프트와 케이티 페리,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스 카메론 등과 같이 주류로서의 테제와 안티테제로서 각축을 벌이며 대중문화 융성의 꽃을 피웠다.

의료기기 역사와 관련해서도 대표적인 라이벌 기업이 있는데, 지멘스와 제너럴일렉트릭(이하 GE)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구대륙인 유럽(독일)과 신대륙인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 기업이다. 1800년대에 설립된 두 회사는 산업혁명과 인류 산업 발전의 선도 위치에 있으면서 200년 가까이 존속하고, 100년 넘게 경쟁한 불세출의 기업들이다. GE의 창업자인 토머스 에디슨은 세상 모든 위인전에 나올 만큼 유명하고, 지멘스의 창업자인 베르너 폰 지멘스 역시 근대 산업 발전에 공헌이 지대한 역사적 인물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GE의 매출은 157조 원, 지멘스는 91조 원이고, 직원 수도 각각 20만 명이 넘는다.

이런 거대 기업임에도 장기간 선두를 차지한 것은 두 회사가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민첩하고 과감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즉,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전기 제품에서 전자 제품으로, 전자 제품에서 IT 제품으로, 하드웨어 중심 제품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제품으로 그리고 B to C에서 B to B로 시대 흐름과 경쟁사의 추격에 따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경한 데 기인한다. 최근에는 각각 '스마트 팩토리'와 '프레딕스'라는 AI, 빅데이터, 가상-증강 현실 등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산업 솔루션을 개발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두 회사가 4차 산업 분야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 이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는 분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의료기기 산업이고 그 중에서도 진단영상장치다. 진단영상장치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제품인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X선 영상진단장치)는 X선을 처음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과 지멘스가 협력해서 상용화를 했다. 이처럼 위대한 물리학자와 기업가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인류 영상진단의 역사는 코르페니쿠스적 진보를 하게 되는데, 이 못지않게 GE의 경우도 드라마틱하다. 스타급 위인인 에디슨과 함께 이 제품을 같이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니콜라 테슬라였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과학자 또는 발명가를 떠올릴 때,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자주 거론되는 인물로 전력 생산과 분배에 사용되고 있는 다상 교류 시스템과 교류전기 유도 모터를 만들어서 '교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887년 테슬라는 단파장 진공 튜브를 이용해 X선을 발견하게 되는데, 뢴트겐이 처음 X선을 발견한 1895년보다 훨씬 앞선 시간이다. 또한 지멘스가 뢴트겐과 함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만들자, 에디슨은 테슬라를 독려해서 더 좋은 경쟁 제품을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이뿐만 아니라, MRI(자기공명영상진단장치), CT(전산화단층엑스선촬영장치), PET(양전자방출전산화단층촬영장치) 그리고 초음파영상진단장치까지 두 회사는 영상진단 분야에서 100년 이상 1~2위 자리를 거의 독점했다.

둘 다 우리나라와 인연도 각별해서 6.25 전쟁 이후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우리나라의 산업화 기반 구축에 기여를 했다. 특히 제품 수입에 기반을 두는 여타 수입 의료기기 회사와 달리, 지멘스와 GE는 1980년대부터 금성(현LG), 삼성과 의료기기 합작 회사를 세웠으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직접 투자해 제조 공장까지 세웠다. 그곳에서 생산하는 제품도 공교롭게 초음파영상진단장치로 동일하다.

이렇게 데칼코마니같이 유사함을 가진 두 회사에도 세부 부문에서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지멘스의 제품이 혁신적이고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제품을 선도적으로 출시했는데, 디지털 검출기(Digital Detector)와 로봇암(Robot-Arm)이 적용된 혈관조영엑스선촬영장치, 엑스선관(X-ray Tube)과 디지털 검출기를 각각 2개씩 가진 CT, 엑스선관 양극(Anode)의 뒷면 전체가 냉각유와 접해서 엑스선관의 냉각 효율과 수명을 획기적으로 높인 엑스선관, 일체형 PET-MR, 전신 코일 부착형(Total Body Matrix) 코일 MRI, IoT와 빅데이터 분석을 제품과 부품에 적용해 원격관리를 함으로써 제품 유지보수의 범위와 예측성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의료기기 관리 시스템, 자기부상 기술을 시약과 검체 이동에 적용한 진단검사 자동화 시스템 등 영상진단 의료기기 역사를 새로 쓴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반면, GE도 '프레딕스'의 경우처럼 준수한 하드웨어 성능을 극대화 및 최적화하는데 탁월한 소프트웨어가 적용된 제품을 출시했고, 골밀도 진단장치, 마취기, 환자감시장치, 심전도 기기, 임상시험 데이터 관리 시스템, 원격의료 및 원격건강관리 솔루션 등 지멘스보다 넓은 의료기기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다양한 솔루션 제공과 지멘스 제품 대비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점은 헬시니어스(Healthineers)와 헬씨메지네이션(Healthymagination)이라는 두 기업의 의료기기 사업 분야의 사명(社名)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전자가 엔지니어와 개척자 마인드를 천명했다면, 후자가 상상력과 유연함을 강조하는 소프트웨어적 마인드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의약품 분야의 제품 개발에도 뛰어들었는데, 지멘스가 바이엘, DPC, 데드 베어링 등 유수의 제약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체외진단 의료기기 사업을 인수했고, GE 역시 애머샴과 같은 세계적인 제약 회사의 제품을 인수해 영상 진단에 필수적인 조영제와 바이오의 약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두 회사는 대개는 같은 방식으로, 때로는 다르게 시장에 접근하고 경쟁하면서 의료기기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가히 용호상박(龍虎相搏), 용쟁호투(龍爭虎鬪)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두 회사가 선의경쟁을 통해 인류 의료와 의료기기 산업에 지속적으로 공헌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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