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세평 – 이상수 KMDIA 보험위원회 부위원장

“규제과학 전문가 양성 필요한 이유”
 

▲ 이 상 수
KMDIA 보험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정부는 의료기기산업 발전 및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보여 왔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오던 의료기기산업에서 국내 제조업체의 연구개발과 국내외 시장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왔다. 의료기기산업은 헬스케어산업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인허가 및 품질관리,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인증,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의 건강보험 급여 및 가격 결정이라는 크게 세 가지 분야의 규제적 절차를 통과해야만 의료기기가 헬스케어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국가 간의 일부 차이는 있겠으나 이와 같은 규제적 절차는 대다수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적 장치이다. 의료기기 인허가와 품질관리의 경우 제도의 국제조화(Global harmonization)가 상당히 이뤄진 반면, 의료기술평가와 건강보험 급여 부분에 있어서는 국제 조화가 미진한 상태이다. 이는 국가별로 상이한 건강보험 제도 운영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규모와 재정 상황이 다르고 헬스케어산업의 사회기반시설(Infrastructure)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기산업은 혁신주도형(innovation-driven) 산업으로 매출 대비 높은 수준(6~12%)의 연구개발(Research & Development, R&D) 투자를 통해 빠른 신기술 제품의 시장 출시가 이뤄진다. 통상 기업별로 3년 내 출시한 신제품이 기업 매출에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으며, 일부 혁신적 기업의 경우 이 비율은 2/3를 훌쩍 넘어선다. 이는 의료기기의 특성인 짧은 생명주기(life-cycle)와 끊임없이 이뤄지는 제품 혁신(reiterative innovation)에 기인한다. 결국 의료기기산업에서 성공적인 기업의 핵심 역량은 규제적 절차를 준수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제 및 정책 목적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양한 과학 원리로부터 도출되는 방법, 도구, 접근방식과 기타 관련된 프로세스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과학 분야를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이라고 한다. 이런 규제과학분야에서 활동할 전문가의 양성은 의료기기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정부는 규제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 현재 2곳의 의료기기특성화대학원을 선정해 규제과학 분야 전문가를 양성 중에 있으며 추가적인 대학원 신설도 고려 중에 있다. 규제과학 전문가 양성은 단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으며 정부는 물론 기업의 인재 육성을 위한 집중 투자가 요구된다. 규제과학 분야는 크게 인허가와 관련한 각국 인허가 및 품질관리 제도 이해,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의 이공계 분야의 학문적 배경, 의료기술평가와 관련한 의학, 임상연구, 역학(epidemiology), 통계학, 그리고 보험급여 제도 관련한 건강보험법, 의료법, 보건경제, 보건정책 등에 대한 넓은 폭과 심층적인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전세계적으로 해당 규제 과학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도가 커짐에 따라 보다 심층적인 전문성과 경험, 통찰력을 갖춘 전문가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세 가지 커다란 규제적 절차 가운데 국제조화가 가장 덜 이뤄진 분야가 보험급여 영역으로 국가별로 제도 및 규제가 매우 상이할 뿐만 아니라 복잡성과 규제 요건이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국가마다 직면하고 있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 급증과 건강보험 재정의 취약성으로 인해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규제를 슬기롭게 극복해 의료기기를 의료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필요성이 전에 비해 매우 커졌다. 전세계적 의료기기시장의 약 43%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8%를 넘어 수년 후에는 20%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돼 국가 수준에서 큰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 지출은 다른 분야의 투자(가령, 교육, 사회간접자본 등)를 가로막아 전체적인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과거와는 다른 헬스케어시스템을 제안했는데 이른바 ‘가치중심헬스케어(Value-Based Health Care, VBHC)’라는 접근방식을 시행 해오고 있다. 과거 의료공급자(의료인 및 의료기관) 사이의 원활하지 못한 협력 체계를 최적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건강보험제도를 변화시켜 의료성과(Health Outcome)는 높이고 비용(Cost)은 낮추는 방식으로 헬스케어시스템을 전환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규제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역량을 필요로 한다. 즉, 보험청구데이터 분석을 통한 의료행태 분석 및 개선점 파악, 비용효과분석을 통한 가치중심의 의료서비스 프로그램 개발, 변화된 제도 하에서 의료공급자의 긴밀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정 능력 등이 요구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헬스케어시스템 하에서 건강보험제도 변화 및 방향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갖춰야만 한다. 미국의 변화는 유럽연합 국가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해외 제도 변화를 주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게 주는 시사점을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은 태생적으로 수출을 통해서만 국가경쟁력 및 성장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으며 의료기기산업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규제가 많은 헬스케어 및 의료기기산업에서 규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규제과학 전문가 양성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특히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는 건강보험 제도 분야 전문가 양성을 위한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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